Skip to content
hseop.com
Go back

아이가 내 곁에 찾아왔다.

약 3분

태어난 날의 아린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아빠가 되었다. ‘아빠’라는 이름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날 처음 실감했다.

아이가 태어난 날

2026년 3월 3일. 공교롭게도 내 생일이기도 한 날이었다 나는 하루 전부터 아내와 함께 병원에 있었다.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긴장감이 감돌았다.

입원하러 오기 전만 해도 서로 웃으며 마지막 만찬을 즐겼는데, 이제는 고통을 겪는 아내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는 고통스러워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호흡을 같이 맞추고 손을 꼭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옆방에서는 벌써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아이가 전혀 내려오지 않네요. 좀 더 지켜봐도 되지만, 제왕절개를 고려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지속되는 진통에 아내는 이미 지쳐 있었다. 상의 끝에, 응급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다.

결정과 동시에 선생님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튼 너머로 수술 준비를 안내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와, 아내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아내와 이야기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렇게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걱정과 두려움이 교차했고, 무엇보다 아내가 겪는 고통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때의 복합적인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0분쯤 지났을까. 간호사 선생님의 호출이 들려왔다.

“OOO님 보호자분!”

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나 처음 만난 아린

열달을 기다린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바로 안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작고 여린 몸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는 우렁차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비로소 알았다. 내가 아빠가 되었구나.

태명을 부르며 “바다야, 아빠 있어. 아빠.” 하고 말을 건넸더니, 놀랍게도 울음이 멈췄다. 아이는 아빠의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아내를 기다리며

아이를 만난 기쁨도 잠시, 마음 한켠은 여전히 수술실에 있었다. 아내는 아직 나오지 못했다.

대기실에 앉아 회복실 전광판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내의 이름 옆 상태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그날 중 가장 길게 느껴졌다.

한참 뒤, 회복실에서 나온 아내를 만났다. 얼굴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함께 입원실로 올라왔다. 아내의 곁에 앉아, 우리는 아이 이야기를 나눴다. 눈은 누구를 닮았는지, 코는 누구를 닮았는지. 잠깐 스쳐 본 아이의 모습을 서로 맞춰보며 웃었다.

수술을 막 마친 지친 얼굴이었지만, 아이 이야기를 하는 아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그날 밤, 우리는 아이의 이름 이야기도 나눴다.

아이의 이름은

뱃속에서 ‘바다’라고 불리던 아이에게, 이름이 생겼다.

아린. 우아할 아(雅)에 맑을 린(潾). 맑고 우아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 고른 이름이다.

아빠가 된다는 것

결혼하고 나서도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그 단어의 진짜 무게를 알았다.

아빠가 된다는 건 아이를 낳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를 책임지고,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그 무게를 매일 짊어지는 일이다.

아이와 나는 생일이 같다. 그날, 아이는 세상에 태어났고 나는 아빠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나는 한 아이의 아빠다. ‘아빠’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 한다.


이 글이 마음에 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