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손녀가 태어난 해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위독하시다는 소식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하루 전,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해 전 생신 때만 해도 생일초를 한 번에 불어 끄실 만큼 정정하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스스로 몸의 이상을 느끼셨다. 아버지에게 먼저 요양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뒤로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뵈러 가지 못한 시간
할아버지가 병마와 싸우시는 동안, 아린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너무 어려 외출이 힘들었고, 그래서 할아버지를 뵈러 가지 못했다. 언젠가 아린이를 안고 찾아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은 몰랐다.
임종
그 무렵 나는 아린이를 보기만 해도 자주 울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 위로 자꾸 할아버지 생각이 겹쳐서, 한번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 쉽게 멈추질 않았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할아버지는 잠시 기력을 되찾으셨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7월 3일 금요일, 임종 소식이 왔다.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눈을 감으신 뒤였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아린이를 보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마지막 가시는 길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셨다. 화장 후, 다음 날 호국원에 안장되셨다.
사정이 있어 호국원 가시는 길은 함께하지 못했다. 그게 또 하나의 죄송함으로 남았다. 다음에 꼭 찾아뵙고, 늦은 인사를 드리려 한다.
초재를 지내며
수국사라는 절에서 49재를 지내게 되었고, 그 첫 번째 재를 지냈다.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를 한참 바라봤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나를 늘 “우리 장군”이라고 불러주셨다. 제사 때면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제사를 지내시던 모습, 할아버지 차 뒷자리에 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워했던 시간들.
그 기억들이 그리워서, 재를 지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저물어간다
아린이가 태어나던 날, 나는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을 봤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한 생이 저무는 자리에 서 있었다.
누군가는 세상에 오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난다. 머리로만 알던 순환을, 몸으로 겪었다.
아린이를 보며 울던 그 무렵,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아린이를 바라보는 이 마음이, 할아버지가 어린 나를 “우리 장군”이라 부르시던 그 마음이었다는 걸.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가 계셨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어 아린이가 있다. 할아버지께 받은 사랑은 할아버지와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를 지나 아린이에게로 흘러간다.
그래서 삶은 끝나는 게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할아버지께 보여드리지 못한 아린이의 모습은, 이제 마음속으로 전해드릴 수밖에 없다. 대신 아린이가 자라면,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증조할아버지가 얼마나 다정한 분이셨는지. 나를 “우리 장군”이라 부르며 얼마나 아껴주셨는지.
할아버지, 이제는 마음 편히 쉬세요.